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1527)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정치 사상가이다. 한 때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으로 활약했으나, 공화국이 몰락하고 메디치 가문이 권력을 다시 차지하면서 추방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군주론』(The Prince, 1513)을 써서 메디치가의 군주에게 헌정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군주론』은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고, 그의 생전에 출판된 유일한 저작은 『전쟁론』(The Art of War, 1520)이다.
마키아벨리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부정적이다. 그의 사상은 일반적으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냉혹한 마키아벨리즘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Machiavellian'이란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정치학의 영역에서는 마키아벨리가 정치적 현실주의와 정치적 이상주의 사이의 간극을 허무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정치권력을 차지하고 유지하기 위한 교본이라고 하겠다. 정치학자로써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현상 유지를 위해서는 강제적인 ‘징벌과 보상’ 방법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알려진 것처럼 마키아벨리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치적 목적을 성취하면 된다는 주장을 편 것은 아니다. 그가 밝히고자 했던 것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권력의 부침을 목도하면서, 선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선한 수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역사적으로 협상과 같은 평화적인 방법(수단)으로 평화로운 세상(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면 전쟁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물리적인 힘을 억제력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하고, 때로는 전쟁이라는 수단에 의존하게 된다.
[아래의 내용은 이룸 출판에서 2006년에 펴낸 『평전 마키아벨리』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헤겔과 마키아벨리」
민족 국가의 옹호자인 헤겔은 마키아벨리식 공화주의를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위한 원형으로 이해했다. 헤겔은 민족 국가 발생을 인류의 궁극적 성취요, 정신적, 정치적, 실질적 성취가 혼합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마키아벨리는 인간이 너무 자기 이익에 몰두해 있기 때문에 이상적인 공화국을 만들어낼 가망성이 없다고 보았다. 마키아벨리에게 민족 국가 혹은 공화국은 결코 영원한 나라가 아니었다.
「마르크스와 마키아벨리」
노동자 계급의 해방이라는 마르크스의 목적은 시민에게 권력을 주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근거한 듯하다. 마키아벨리는 『리비우스 논고』에서 이 개념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개작하면서 두 가지 근본적인 오류를 범했다.
첫째, 마키아벨리는 국가를 시민이 지배해야 한다고 믿지 않았다. 마키아벨리는 민주주의를 제한되고 고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고, 전반적인 그의 이해는 당시의 초기 민주주의 방식에 제한되어 있다. 마키아벨리의 관점에서 이상적인 정부는 시민이 군주와 협력하는 정부이다. 마키아벨리는 정치 지도자를 시민이 선출하는 정치 체제(현대 민주주의 체제)는 상상하지 못했다.
둘째, 마르크스는 국가가 번영하고 안정을 이루려면 오직 한 가지 방법, 모든 정치권력이 프롤레타리아에게 부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마키아벨리는 자기가 보았던 이상적인 모형이 국가로써 성공적으로 기능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마키아벨리의 일곱 가지 정치 철학적 원칙」
1. 역사는 승자가 쓴다.
2. 사람들을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3. 성공적인 지도자는 사자이면서 여우여야 한다.
4. 지도자는 운이 좋아야 하며, 운을 최대한 활용할 준비를 갖추어야한다.
5. 사회가 강력한 지도자의 행동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때도 있다.
6. 항상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자국민으로 군대를 구성하라.
7. 국가는 통일되어 있어야 강력함을 유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