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죠수아 헤쉘(Abraham Joshua Heschel)의 전쟁과 평화
[헤쉘 사후 24년(1996년) 만에, 그의 딸 수산나(Susannah Heschel)가 아버지의 글에서 선별하여 묶어낸 책(Moral Grandeur and Spiritual Audacity)에서 발췌했다.] (이재천 역)
20세기 신학계에 ‘예언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유대교 신학자 헤쉘(1907-1972)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동유럽의 하시디즘을 대표하는 집안이었다. 헤쉘은 히틀러의 박해를 피해서 거의 마지막 순간(1939년 여름)에 영국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이후 미국 뉴욕의 유대교 신학교에서 가르쳤다. 그러나 그의 가족 대부분은 나찌의 학살에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전쟁 이후 그는 다시 유럽 땅을 밟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과 헤쉘>
마틴 루터 킹 목사(Martin Luther King, Jr.)와 함께 흑인 인권운동에 참여했던 헤쉘은 유니온 신학교 학장이었던 John Bennett 등과 함께 베트남 전쟁 반대 행진에도 참여했다. 킹 목사는 1967년 봄, Riverside Church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 입장을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공포했다. 헤쉘도 자신의 신앙에 기초해서 전쟁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기도의 목적은 청원하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구원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해달라는 청원이 기도의 초점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드러나게 되는 순간이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면,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실재를 드러내는 존재여야 한다. 만일 우리가 폭력과 살인행위에 가담한다면, 그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모독하는 것이다.”
「평화 운동에 참여하게 된 이유」(1973년)
나는 베트남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혈사태에 대해서 미국인의 한 사람으로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베트남의 상황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서 분명해지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남과 북 베트남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남베트남 주민들의 비참한 삶과 부패와 절망에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1965년경에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는 것은 악의 행위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베트남으로부터의 즉각적이고 완전한 철수가 가장 현명한 결정이라고 확신한다.
이 전쟁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전쟁이다. 전쟁이란 어떤 경우에든 극도의 잔학행위를 초래하며, 자신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차대전의 의미」 (1944년)
파시즘(Facism)이 우리의 양심을 정당화할 근거가 되게 하지 맙시다. 우리는 옳음과 정의와 선을 위해서 싸우지 못했습니다. 그런 결과로 우리는 그릇됨과 불의와 악에 대항해서 싸워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제단에 희생제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전쟁의 제단에 희생제를 드려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이 전쟁이 발발한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예측되어 왔던 영적 재난(a spiritual disaster)의 결과입니다. 탱크와 전투기가 인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총을 든 사람은 총을 들지 않은 맹수와 같습니다. 뱀을 죽임으로써 우리를 일순간 구원할 수는 있겠지만, 영원히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과제는 우리의 영혼을 빠져 있는 구덩이에서 건져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