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평화론』(Einstein on Peace)
(이재천 역)
오토 네이든(Otto Nathan)과 하인츠 노든(Heinz Nordon)이 편집(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60)했고,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이 서문을 덧붙였다.
아인슈타인이 1914년에서 1955년에 걸쳐 쓴 글(주로 편지) 중에서 ‘전쟁과 평화’에 관한 내용을 발췌하여, 글이 쓰인 정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연대순으로 정리했다.
아인슈타인이 전쟁의 폐지를 위해서 투쟁한 것은 전쟁의 잔혹한 결과를 증오했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방식으로 국가 간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것 자체를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평화주의는 지적 이론에서 추론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잔혹성과 증오심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에서부터 비롯한 것이다. 그가 자신의 평화주의적 신념을 공적으로 피력하기 시작한 것은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부터이다.
아인슈타인은 전쟁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태’로 규정하고, 자신이 인간이라는 이토록 타락한 종(species)에 속해있다는 사실에 대해 탄식했다. 그는 전쟁에서 자행되는 행위들이 우주의 숭고한 법칙을 위반하는 것이며, 고의적으로 수 백 만의 인명을 학살하는 것은 자신이 과학자로서 그토록 경외했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믿었다.
아인슈타인의 평화주의는 전쟁을 폐지하고 무기와 폭력적 수단에 의존하지 않고 국가 간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한 세계적인 기구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1914년에 유럽 통합(United Europe), 1919년에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그리고 1945년에는 국제연합(United Nations)의 출범을 지지했다.
아인슈타인에게 평화주의는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국가에 대해서 무방비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나찌 독일과 같은 악한 세력에 맞서 주변국들의 재무장이 필요함을 역설함으로써 평화주의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1939년 여름,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핵폭탄의 생산이 전쟁을 억제하는 뚜렷한 가능성이 될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은 말년을 미국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미국 사회에서는 전쟁 폐지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평화를 옹호하는 것은 비애국적 행위로 의혹을 받게 되고, 정치적 박해를 감수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평화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점점 소외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평화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학자들과, 민족주의적 선전에 휘말린 다수의 무지함에 대해 개탄했다.
아인슈타인은 1931년, 뉴욕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선한 전쟁은 없으며, 나쁜 평화도 없다’고 한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말에 동의합니다. 나는 평화주의자인데 과격한 평화주의자입니다. 나는 평화를 위해서 기꺼이 싸우고자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전쟁에 나서기를 거부하지 않는 한 전쟁은 결코 끝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