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신학연구소 목회와 신학연구 세미나 가을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09년 9월 10일 목요일 12시부터 4시까지 세미나가 진행되었습니다.
발제자는 김창주박사님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아래 내용은 김창주 박사님의 출애굽기와 원어설교 첫번째 세미나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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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와 원어 설교 I

2009년 9월 10


한기장신학연구소                                                                                                                           김창주



1. 야곱의 혈속이 모두 ‘칠십 인’(שׁבעים)이더라(1:5; cf. 창 46:27)


5살: 글자를 배우며 성서를 읽는다

10에 미시나, 13에 모든 계명을, 15에 탈무드를 배우며, 18에 결혼,

20에 생계에 종사하고 (弱冠)

30에 강해지며 (而立)

40에 모든 것을 이해하며 (不惑)

50에 조언할 수 있고 (知天命)

60에 장로가 되고 (耳順)

70에 흰 머리가 나오고 (古稀)

80에 특별한 힘을 보여주며 (望九)

90에 몸이 구부러지고

100이면 세상을 떠나도 좋다.<Abot 5:21>


        다음은 성서에 자주 등장하는 숫자를 정리한 것이다.

10: 열 가지 말씀(출 34:28; 신 4:13, 10:4)

   두 손가락의 합, 완전과 새로운 시작, 절대성, 이해력 등을 의미 아담에서 노아까지 10대 십계명, 다윗의 하프 10줄, 카발라 세피로트

cf. ‘만물을 포괄하며 만물의 경계를 이루는 어머니’ 피타고라스


12: 고대 세계에서 12 궁도, 12달, 성서의 야곱 12 아들, 12 제자, 희랍신화의 헤라클레스 12 과업 등에서 보듯 순환과 질서, 그리고 힘의 작용을 상징한다.


20: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20년(창 31:38): 손가락 발가락의 합계로서 한 사람의 총체

성막 뜰의 기둥(27:9-10)


30: 요셉이 총리에(창 41:46); 사울, 다윗의 왕에 오른 나이(삼상 13:1; 삼하 5:4)

회막에서 봉사할 수 있는 나이 (민 4:3)

아비멜렉의 아들 30, 성읍이 30 (삿 10:4)

예수의 활동 시기 서른 살쯤이었다(눅 3:23)


40: 노아의 홍수 40일, 광야에서 40년, 모세의 미디안 40년, 구름 속에서 40일, 예수의 광야 40일 시험 등등은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며 영적인 의미에서 정화의 과정(purification)이며, 동시에 ‘새로운 내일’을 위한 도약과 연단의 시간이다. 랍비들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태아(embryo)가 된 시점을 40일로 본다.


50: 하나님이 요구한 최초 의인의 숫자 50명(창 18:24),

50년은 희년(레 25:10), 일생을 50으로 보고 적어도 일생에 한 번 희년을 경험하도록

레위인의 회막 봉사 50세까지(민 4:3)

동침한 처녀에게 몸값 50세겔(신 22:19),

성막의 기본은 50규빗 정사각형 2개,

엘리야가 선지자 50명씩 굴에 숨겨(왕상 18:4)

신약에서는 50은 ‘인생을 충분히 경험한 나이’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요 8:57)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요 21:8)


60: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60만 (출 12:37)? 그러나 정확하게는 603,550(출 38:26; 민 1:46)

회막 기둥이 모두 60개, 화목제로 쓰인 제물이 숫양 숫염소(민 7:88)

“솔로몬의 침대는 용사 60인이 호위”(아 3:7; 6:8), 성안에서 만난 60명의 평민(렘 52:25)

위에서 보듯이 완벽한 방어, 곧 하나님의 보호를 가리킨다.


30배 60배 100배(막 4:8)?


70: 안정적인 가족 단위를 가리키는 숫자

노아의 후손 70명? 신약에서는 제자 칠십(눅 10:1,17)

이집트의 야곱 혈속 칠십인(출 1:5, 창 46:27),

이집트 사람들은 칠십일 동안 요셉을 애도(창 50:3)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출 24:1,9, 민 11:24, 겔 8:11), 열조 칠십인(신 10:22)

기드온의 아들 칠십인(삿 8:30),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삿 9:2), 아합의 아들 칠십(왕하 10:1,7)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시 90:10)

또한 70은 하나님의 인내를 보여주는 기한(사 23:17, 렘 25:11, 29:10, 단 9:2, 슥 1:12)


        일반적으로 ‘70인역’으로 알려진 헬라어 구약성서는 원래 72명의 현자가 번역에 참여하였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70인역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유대교의 ‘70’에 관한 숫자의 상징이 들어있다. 즉 이집트에 내려간 야곱의 혈족 70, 혹은 계약을 맺을 때 하나님을 경배한 장로 70, 심지어 예수가 70명의 제자를 파송한 것 등에서 알 수 있듯 70이 하나님의 비밀(divine secret)을 간직한 숫자로 받아들여졌다.


2. 이집트(מצרים)

        이집트는 히브리어로 미츠라임이다. 노아의 손자이며 함의 아들 이름이기도 하다(창 10:6). 그 후예들이 정착한 곳이 다름 아닌 이집트, 미츠라임이다.  어원을 따라가 보면 ‘억압하는 자, 원수,’ 또는 압제당하는 ‘고통’ 등을 의미하기도 하고, 지형적으로는 거대한 벽이 양쪽에서 짓누르는 형상의 ‘협곡’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집트는 나일강의 장대한 물줄기가 부딪히는 비옥한 하류지역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집트’는 이제 지형적인 상징에서 ‘나일강의 양안,’ ‘두 물줄기,’ ‘경쟁 상대,’ ‘이중 압박’ 등으로 그 의미가 확장된다. <Biblical Hebrew E-Magazine. January, 2005>

        또한 이집트는 4대 문명의 발상지인 나일강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고대 이집트 문명을 지칭하는 왕조 혹은 지명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이집트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선진국으로 각인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차적인 의미, 즉 이집트가 의인화 되어 ‘억압, 구속, 제약, 속박’ 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집트는 ‘종 되었던 집’(13:3, 20:2; 신 5:6, 13:5; 수 24:17)이라는 관용어로 쓰이게 된다. 현재 이스라엘의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우리는 이집트에 파라오의 노예였다’(신 5:15, 15:15, 24:22)고 기록하여 끊임없이 그 사실을 기억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이집트는 선진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럼으로써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고 오히려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며 대상이었다.


3. 십브라와 부아(1:15), ‘사타구니’(1:16)

   (자리를) 살펴서(개정), 잘 살펴서(새번역), 사타구니(공동)

        개역이나 새번역은 번역하지 않고 건너간 단어이나 공동번역은 ‘사타구니’로 옮겼다. 원래는 돌(אבן)의 정관사 +양수(האבנים)이다. 그러므로 직역하면 ‘그 두 돌’이라는 뜻이 된다. 개역과 새번역은 이 단어가 여성의 은밀한 신체 부위를 암시하는데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아예 빼고 옮기는데 비하여 공동번역은 약간 변형시켰다.

        학자들 사이에 다소 이견이 부딪히는데 여성 생식기의 완곡한 표현이라고 보는 견해와 해산할 때 산모의 통증과 해산을 돕는 기구(birthstool)라는 의견이 갈린다.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출산을 나타내는 형상은 여성이 무릎을 꿇는 자세이다.<어서가거라, 55>

        이 때 두 사람의 산파는 십브라와 부아이다. 십브라는 ‘아름답게 되다,’ 부아는 ‘향기롭게 빛나다’는 뜻이다. 특히 부아는 우가릿 문헌에서 영웅 ‘다니엘,’ 혹은 ‘다넬’의 딸 이름으로 등장한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던 산파들은 이집트 바로의 명령을 어기면서 히브리 아이들을 살려내는 생명의 파수꾼 역할을 한다.


4. 방주인가? 갈대상자인가?(2:5)

        창세기 6장 이하에 언급되는 노아의 ‘방주’와 출애굽기 2장에서 어린 모세를 태워 보냈던 ‘갈대상자’는 히브리어의 같은 단어 테바(תבה)의 번역이다(창 6:14, 7:1,9, 8:6,9, 9:18; 출2:3,5). 구약성서 오직 두 곳에 등장하는 이 낱말은 그 번역의 확연한 차이 때문에 두 개의 다른 낱말로 생각하기 쉽다.

        노아와 모세는 홍수와 홍해 바다로부터 가족과 백성을 구원해낸 민족적 영웅이다. 즉 노아는 300x50x30 규빗 크기의 3층으로 건축된 거대한 방주에 8 식구와 각종 동물을 태우고 40일 동안의 홍수에서도 살아남았다. 한편 모세는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역청과 나무 진’을 바른 허술한 갈대 상자에 실려 강물에 떠내려갔지만 바로의 딸 ‘비티아’에게 발견되어 구사일생 목숨을 건진다.

        ‘상자’나 ‘관’ 등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테바’는 이집트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창세기의 노아와 그의 가족, 각종 동물을 태웠던 커다란 ‘방주’와 출애굽기의 갓난 아이 모세를 태웠던 작은 ‘갈대상자’는 크기에서 비교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테바에는 배의 방향을 조종할 수 있는 조타장치가 없다. 이것은 테바가 오로지 강물의 흐름과 바람을 따라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따라서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갈대상자는 그 안에 몸을 싣고 있다고 해도 그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도 없거니와 더구나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없다. 오직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에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



5. ‘부르짖다’(זעקה)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זעקה)     듣고 그 우고를 알고(3:7)

   소리 질러(kra,zw)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      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더 소리 질러 (ma/llon kra,zw)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 10:47)


        히브리어 ‘체아카’는 단순히 ‘소리 지르다, 격렬히 고함치다’보다는 저 멀리 하늘에서 하나님이 들릴 수 있을 정도의 큰 소리에 해당한다. 예수께서 ‘큰 소리’(fwnh.n mega,lhn) 지르시고 운명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막 15:37), 그것은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전에 모든 힘을 다하여 지를 수 있는 최후의 탄원이었다.

        매미는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소리를 내어 운다. 그런데 도시에 사는 매미 소리와 산중에서 우는 매미 소리의 크기가 다르다고 한다. 도시의 각종 소음은 수컷의 울음소리를 암컷에게 전달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목청껏 소리를 높여야만 암컷에게 소리가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종족보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도시의 매미가 크게 울어 자신을 알리듯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과 소경 바디매오는 더욱 더 소리 높여 도움을 요청한다.


6. ‘히브리’(3:18), 유대, 이스라엘

        고대 근동과 구약성서의 용례를 중심으로 ‘히브리’가 누구인지 살펴보자. 성서에서 최초의 히브리로 묘사된 아브라함이 떠돌던 지역이 다름 아닌 ‘갈대아 우르’(창 11:31 cf. 느 9:7), ‘하란’(창 12:4,5)이었다는 점은 ‘히브리’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배경그림이다. 최근에 발굴된 하란 지역의 에블라 왕국은 셈의 아들 아르박삿 → 셀라 → ‘에벨’이 건설한 것으로 히브리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창 10:24).


‘br   → to cross (river)

pr   → to provide (food)

eperu → dust


① 어원적으로 Apiru는 ‘dusty people' 사막을 떠돌아다니는 베두인, 강을 건너다니는 이주 노동자, 약대의 흙먼지를 따라 다니는 대상의 말잡이 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 ‘먼지’(עפר)와 관련성, 흙의 먼지와 같은 미미한 존재 (‘땅의 흙’)

② 지형적으로 하비루는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을 중심으로 양식을 찾아(to provide) 이리 넘고 저리 넘으며(to cross), 흙먼지를 일으키는(dust) 떠돌이로서 경우에 따라서는 용병으로 고용되거나, 고관대작의 식객이 되기도 하였고, 스스로 노예로 팔리기도 하였다.

③ 특정한 지역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혈족에 의한 혈연 공동체나 동일한 언어를 공유한 문화 공동체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즉 용병(삼상 14:21), 부랑자나 떠돌이(창 14:13, 창 39:14), 범죄자나 노예 (창 37:14) 등이며, 이들이 무리를 지어 지도층을 급습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유목민이었다(수 24:2). 보통 혈족으로 형성된 종족이나 동일한 문화를 공유한 집단으로 보지 않고 하층 계급이나 주류에 들지 못하는 변방의 소외된 무리를 가리킨다.

④ 신앙적으로 볼 때 ‘대안(對岸)에 서서 저편 기슭을 바라보다.’ - 랍비들의 견해에 따르면 여러 가지 정보를 알고 경험과 지식을 쌓는 일이 곧 ‘대안에 서서 본다’는 뜻이다. 실제로 자신들의 과거 ‘강 저편의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신 10:19).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과거 ‘강 저편에서’ 경험하던 나그네, 고아, 과부 등의 삶을 보살피려 여러 가지 규정을 제정한 것이다(신 14:29, 24:17, 19-21, 27:19).1)

        히브리들은 유프라테스를 넘나들고, 가나안을 지나 이집트에 정착하였고, 후에 홍해를 다시 건너 광야를 유랑하다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진입하였다(수 24:3). ‘히브리’의 여정은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에 정착함으로써 완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시대와 사상의) 강을 건너며 새로운 공간을 열고 있다. 

7. 모세 vs 라암셋(1:13, 12:37)

        모세는 바로의 공주 ‘비티아’가 나일강 하류에 갈대상자에 담겨 흘러내려오던 어린 아이를 ‘물에서 건져내었다’는 의미로 이름 지어졌다. 그러나 ‘모세’는 성서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어휘일 뿐 아니라 동사형으로 볼 때도 ‘건져내었다’는 능동형보다 ‘건짐을 받았다’는 수동형이 가능성이 많다. 이렇듯 원인론적 해석은 사건의 실체보다 모세의 운명을 풍자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원래 모세는 이집트 이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투트모세는 지혜의 아들, 라암셋, 혹은 람세스는 태양의 아들이 되고 ‘모세’라는 이름이 독립적으로 쓰인 경우도 발견된다. 몇 해 전 크리스티앙 자크는 장편 소설 ‘람세스’를 발표하여 독자들을 흥분시킨 적이 있다. 자크는 소설에서 모세가 이집트에서 ‘신의 아들’이었다고 쓰고 있다.

        사실 모세는 (물에서) 구원을 받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고, 후에는 그의 백성을 (홍해에서) 구원하였다. 그렇다면 모세는 역시 도탄에 빠진 많은 백성을 건져낼 ‘메시아’의 원형 아닐까?


8. 요게벳(6:20, 민 26:59)

        요게벳은 모세와 아론, 미리암의 어머니이며 ‘여호와는 나의 영광’이라는 뜻이다. 성서에서 최초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단축되어 사람 이름에 결합한 경우이다.

        요압은 ‘여호와는 아버지,’ 요아는 ‘여호와는 나의 형제,’ 요엘은 ‘여호와는 하나님,’ 요하난은 ‘여호와는 은혜,’ 요나단은 ‘여호와는 선물,’ 여호사밧은 ‘여호와는 심판자,’ 여호사닥은 ‘여호와는 의로운 분’ 등을 각각 의미한다.

        그러나 ‘여호야긴’은 동일한 패턴의 합성 이름이지만 앞뒤로 교차가 자유롭다. 즉 ‘여호 +야긴’이기도 하나 ‘야긴 + 여호’로 결합되기도 한다. ‘여호야긴’은 여호야김이 죽자 왕위에 올라 석 달 동안 통치하였으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비운의 인물이다(왕하 24장). 바빌론 포로 생활 37 년 만에 바빌론 왕 에윌므로닥이 즉위하여 여호야긴을 석방하였다(왕하 25:27).

        하지만 동일한 인물이 ‘고니야’(Coniah), 또는 ‘여고냐’(Jechoniah)로 소개된다.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렘 22:24, 27:20, 29:2 등).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에 2:6, 마 1:11-12). 한 사람의 이름이 ‘여호야긴, 고니야, 여고냐’ 등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동일한 인물이다. 문제는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는 의미로 여호야긴과 고니야로 바꿔 쓰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이스라엘의 수상을 지낸 ‘나탄야후’는 성서의 ‘요나단’을 앞뒤로 바꾼 경우이다.


9. 미리암 vs 마리아(15:20)

        한 때는 우리나라 강아지 이름의 80%가 메리였다. 영어 이름 Mary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서 비롯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리아는 가장 신비로우면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이름이 된 것이다. 학문 영역에 Mariology라는 분야가 있다. 글자 그대로 마리아를 연구하는데 마리아학회와 마리아 연구센터가 있다. 가톨릭교회에서 마리아는 신앙의 본보기로서 성인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와 거의 동급으로 간주되는 숭모의 대상이다. <성모 마리아, Madonna, Our Lady, Notre Dame> 그러므로 마리아의 일생과 죽음에 관한 신비로운 일화들이 넘쳐난다. 동정녀로서 예수를 잉태하였다, 그러므로 그녀는 아무런 흠이 없는 완벽한 여인이다, 죽은 후에 육체와 영혼이 하늘로 올라갔다 등.

        신약성서 마태복음에 처음 등장하는 ‘마리아’가 구약 출애굽기에 나오는 ‘미리암’과 같은 이름이라는 사실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구약성서가 라틴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현상이다. 즉 Vulgate에서 미리암을 Maria로 음역한 후 로마자 문화권에서 Mary로 정착되었다. 미리암의 어원은 불분명하지만 동사로는 ‘아이를 간절히 원하다,’ 또는 ‘높이다’가 되고 분사형으로는 ‘사랑받는 이’라는 뜻이다.

        미리암은 출애굽기 서두에서 익명으로 등장하나(2:4) 이제는 ‘아론의 누이,’ 그리고 ‘선지자’로 소개된다. 드보라(삿 4:4), 훌다(왕하 22:14), 노아댜(느 6:14) 등과 나란히 여선지 대열에 포함된 인물이다. (유대교에서는 한나, 아비가일, 에스더도 여선지에 속한다) 모세가 어렸을 때 바로의 딸에게 히브리 여인을 소개하기도 하였고, 출애굽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15:20). 나중에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일로 모세를 비방하고 문둥병이 걸려 눈처럼 희게 되어 7일 동안 진 밖에 격리되기도 하였다(민 12장). 광야 40년이 끝나던 정월에 가네스 광야에 묻혔다(민 20:1).

        *하와(חוה) vs 이브(Eve)?

70인역(LXX)은 에우아 (Eua), 라틴어 Vulgate는 하바 (Hava), 영어는 Eve 로 음역한 것이다.


10. 시내 - 스네 - 호렙 - 예벨 무사

        모세는 양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해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한다(출 3:1). 그곳에서 떨기나무와 ‘신묘 조우’가 이뤄진다(출 3:2). 여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산 호렙 즉, 호렙산은 흔히 시내산과 혼용되는 경우가 많다. 호렙산은 시나이 반도 남서쪽 끝에 위치한 해발 2290m의 지금의 ‘예벨 무사’(Jebel Musa)로 추정된다. ‘모세의 산’이란 뜻이다. 모래투성이의 황무지 건너편에 위치한 비옥한 초원이 펼쳐진 시내산 근방의 고원지대를 일컫는다. 이곳은 가뭄 때 유목생활을 하는 베두인족이 즐겨 찾는 지역이다.

        호렙산과 시내산에 대해서는 대략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이 두 산은 명칭만 다르고 지역은 같은 이명동지(異名同地)라는 설이 있다. 둘째, 동일한 산맥 줄기에 솟은 2개의 큰 산이라는 견해도 있다. 셋째, 호렙은 넓은 의미에서 지칭할 때 사용되고 시내는 호렙 중에서도 가장 높은 봉우리를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 따라서 호렙과 시내산은 서로 다른 2개의 산이 아니라 적어도 한 산을 지칭하되 서로 다른 명칭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호렙산이 특별히 ‘하나님의 산’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그 산이 원래 신성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그곳에 나타나셔서(출 3:4∼5) 모세에게 출애굽의 소명을 부여했고 율법을 수여했기 때문에 히브리 민족이 성별해서 부른 데서 비롯됐다. 여기에 등장하는 떨기나무는 시내 광야 전역에서 흔하게 자라는 아카시아 종류의 키 작은 가시덤불을 가리킨다. 키 작은 가시덤불은 애굽에서 노예로 비참한 굴종의 삶을 살았던 히브리 민족을 상징하는 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떨기나무에 여호와의 사자가 임한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탄식을 들으시고 구원해주실 것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2)

        시내산은 ‘모세의 산’이라는 예벨 무사, 예로부터 이곳에 수많은 수도자들이 몰려와 명상과 수련을 하였던 곳이다. 왜? 하나님이 모세를 만난 산, 곧 하나님이 현현한 산이기 때문이다. 출애굽기에는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광경에 신기한 ‘스네’(סנה)를 등장시킨다. 불이 붙었던 떨기나무가 타지 않고는 그대로 있는 신비로운 광경이 연출된 것이다. 히브리어 스네는 오직 출애굽기 3장에만 쓰인다. 또한 시내산과 호렙산은 성서에 함께 사용되지만 스네와 관련하여 출애굽기에 시내산이 자주 언급되기 때문에 그 연관성을 살피면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호렙은 세미한 음성, 눈여겨 보지 않는 스네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