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봄학기 목회와 신학연구 세미나
▶ 일 시: 09년 5월 21일 (목), 오후 12시-4시
▶ 장 소: 한국기독교장로회 신학연구소 세미나실
▶ 내 용: 개혁교회의 직제에 관한 연구
▶ 발 제: 최 영 박사 (신학연구소 연구실장)
▶ 주요내용: 1. 칼빈의 직제론 - '제네바 교회의 조례(1541)'와 '기독교강요' 등에서 드러나는 칼빈의 직제론
2. 제네바 교회 직제에 대한 상황적 이해
3. 개혁교회 직제의 역사적 변화
4. 한국 장로교회의 직제와 전망
5. 제직 교육에 필요성과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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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의 직제 이해
-개혁교회 직제의 신학원리와 실제
Ⅰ. 들어가는 말
목사, 교사, 장로, 그리고 집사의 4중 직제는 칼빈이 1541년 제네바에 귀환하여 채택한 제네바 종교개혁의 본질적인 구성요소였다. 칼빈 학자들은 이 칼빈의 4중직제가 칼빈이 스트라스부르에 체류할 때 그곳의 개혁자 마르틴 부처로부터 차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칼빈은 1541년의 새로운 「제네바 교회법령집」에서 이 4중직을 교회 정치의 기초로 삼고, 1559년 『기독교강요』최종판에서는 이 4중직을 성서적 직제라고 주장한다.
개혁교회는 일차적으로 교회행정 혹은 정치체계가 아닌 하나의 신학적 전통을 언급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개혁교회에는 감독정치제와 회중정치제를 채택한 일부 교회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개혁교회들은 그들 각각의 역사를 통해 장로회적인 교회정치 체계를 채택해왔다. 그러나 차이가 존재한다. 예컨대 미국 개혁교회(CRC/RCA)에서 집사는 장로와 함께 당회를 구성하지만, 미국 장로교회에서는 다른 고전적인 장로교회들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기독개혁교회(CRC)총회는 노회가 더 큰 권위를 갖는 미국개혁교회(RCA) 총회보다 더 큰 입법적 권위를 갖는다. 또 미국개혁교회는 다른 교단들과는 달리 칼빈이 제정한 교사 혹은 박사를 항존직에 포함시키고 있는 거의 유일한 교단이다. 또한 한국 장로교회의 직제에는 고전적인 장로교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전도사직’과 ‘권사직’이 있다.
오늘날 현대의 개혁교회들은 만인사제직으로 알려진 일반적인 교역을 강조하며 특수 교역은 그것을 전제로 한다고 주장한다. 직제에 대한 개혁교회의 이러한 변화된 입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 이후 계속되는 교회들 사이의 다양한 대화 노력을 반영한다. 우리는 이 글에서 우선 개혁교회 직제의 신학원리가 되는 만인사제직의 성서적 근거와 의의에 대해서, 이어서 칼빈과 개혁교회의 역사적 신앙문서들을 통하여 고전적 개혁교회의 직제에 대해 살펴보고, 미국장로교회와 한국 장로교회(기장측)의 문서들을 통하여 현대 개혁교회의 직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Ⅱ. 루터의 만인 사제직의 성서적 근거와 의의
구약시대의 사제는 그의 백성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중보자와 대리자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사제는, 대사제조차도,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것처럼 그 자신들을 위해서도 희생제물을 바쳐야 했다(레 16:6; 히 9:7). 그런데 신약성서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단 한 번의 영원한 유효한 제사”(히 10:12)를 통하여 사제직의 진리를 최종적으로 성취했기 때문에, 다른 사제들처럼 날마다 반복적으로 먼저 자기 죄를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리고, 이어서 백성을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다(히 7:27, 9:24-28, 10:9). 또한 다른 사제들이나 대사제들과 달리 어느 다른 사제에 의해 대체될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그리스도는 신약의 유일한 대사제, 하나님 백성의 유일한 대리자와 유일한 중보자인 동시에 유일한 목자가 되신다.
그런데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이 이제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 직접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신자들이 “택하신 족속, 왕과 같은 제사장, 거룩한 민족, 하나님의 소유”(벧전 2:9)가 된 것이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히 10:19-22), “거룩한 산 제물”을 드리고(롬 12:1),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와 기도와 중보기도와 감사기도”를 드리며(딤전 2:1-2) 복음을 선포할(벧전 2:9) 특권이 주어졌다. 여기서 구약시대의 특별 사제 계급은 새롭고 영원한 대사제의 유일한 사제직에 의해 해체되고 생소하면서도 매우 당연한 전환으로서 모든 신자들의 “만인사제직”이 나온다. 그러나 교회의 성직주의가 급속도로 진전되면서, 오로지 특정한 직무 담당자만이 ‘사제’라 불리기 시작하였고, 만인사제직은 신자들과 대부분의 신학자들의 의식에서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면서, 마침내 중세에 들어와서는 성직자들의 “영적 신분”과 평신도들의 “세속적 신분”이라는 “두 신분론”이 완전히 고착되고 말았다.
교회역사에서 잊혀진 이 만인사제직을 다시 되살린 자는 루터이다. 루터의 견해에 따르면,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동일한 직분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동일한 영적 신분에 속한다. 단지 교회의 직분은 영적인 전권을 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교육적인 전제조건을 다 갖춘 사람들에게 주는 신앙공동체의 위임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루터의 교훈 중에서 이 만인사제설만큼 오해되는 교리는 없다. 어떤 사람에게 이것은 단순히 교회에는 더 이상 사제가 필요 없다는 식으로 성직자의 세속화를 말하는 것으로 오해된다. 좀더 일반적으로 만인사제직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한 성직 임명을 통하지 않고도 스스로 사제나 목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식으로 잘못 알고 있다. 이러한 오해와 왜곡은 모두 루터가 만인사제설을 통해 원래 의도했던 바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의 교리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다. 만인사제직 안에서 그리스도인 각자는 모든 자매와 형제들에 대하여 사제이다. 따라서 만인사제설은 종교개혁 전통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어떠한 임무라도 넓은 의미에서 사역으로 이해했다. 이 만인사제직의 존립근거는 신자들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그의 뜻을 증언하고 세상에 대한 봉사로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데에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일상생활의 가장 미천한 일이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생각으로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그것을 빛나게 한다는 소명에 대한 칼빈의 견해는 항상 주목해야 한다: “주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이 모든 행동에서 각각 자기의 소명에 관심을 둘 것을 요구하신다... 모든 일에 있어서 선행의 시작과 기초는 주님의 소명이라는 것을 알면 충분하다... 만일 소명임을 알고 순종한다면, 아무리 낮고 천한 일이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빛날 것이며 아주 귀한 것으로 인정받을 것이다”(Inst. Ⅲ.10.6).
그러므로 만인사제직은 모든 소명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넓은 의미의 사제임을 말하지만, 그러나 모든 소명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데 필요한 공적 기능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평신도가 교회 안에서 설교자, 교사, 혹은 상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동일한 신분이지만, 맡은 바 직분과 기능이 다르다. 그러므로 만인사제설은 일부 개인들이 교회 안에서 특별한 직분을 맡기 위해 부름을 받는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만인사제직을 주장한 루터조차도 목사직의 철폐를 추진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제라는 것은 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목사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목사는 그리스도인이며 사제라는 것 이상으로 교구로부터 한 직무와 명령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소명과 명령이 목사와 설교자를 만드는 것이다.” 루터는 분명히 세례를 통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사제들이라는 것을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가 적절하게 부름을 받지 않았다면 안수 받은 목사가 없을 때의 긴급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목회 기능을 수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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