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평화주의 (Pacifism)
I. 초기 교회의 평화주의
1. 터툴리안 (Tertullian, 160-220)
초기 기독교의 가장 뛰어난 변증가로 손꼽히는 터툴리안은 로마의 속주였던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태생이다. 그의 아버지는 이방인 출신 로마군 백부장이었다.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으며, 법률가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1) 몬타누스파의 영향
터툴리안은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 Montanism을 추종했었다. [* 몬타누스파는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맞을 준비로서 엄격한 금욕주의를 주장했고, 금식, 독신, 순교를 장려했으며, 재혼을 금했다.]
터툴리안의 신학 작품에는 금욕적인 내핍생활을 강조하는 Montanist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특히 초기 작품에서 그렇다.
2) 평화주의에 대한 저술
터툴리안은 신학자로서 그의 전 생애 동안 기독교의 가르침과 도덕적 생활의 실천 사이의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연결을 시도했다. 그의 작품 중에 전적으로 군인의 문제를 언급한 글은, 그가 아직 Montanist 영향에 머물러 있던 시기에 쓴, 「왕권론」(On the Crown)이다. 군 복무에 대한 회의주의적 견해를 밝힌 초기작으로는 「변증론」(The Apology) 등이 있다.
3) 우상숭배의 문제
우상숭배 문제는 로마군의 행진 퍼레이드 문화와 관계되는데, 크리스천 군인으로 하여금 행진 시에 머리에 쓰도록 되어있는 관을 쓰지 말라고 권면하기 위해서 언급한다. 터툴리안의 저작 전편에서 드러나는 중심 주제는 하나님에 대한 복종의 의무와 우상숭배의 죄이다. 그는 우상숭배는 인간의 ‘으뜸가는 죄악’이라고 불렀다. 터툴리안은 이교도 제의에 간접적으로나마 협력하게 되는 것이 이 세기 로마제국 사회 안에 편만해있는 위험임을 분명히 깨닫게 해주었다. 그는 그릇된 신과 우상을 숭배하기 위해서 거행된다는 점에서 서커스, 오락 경기, 각종 쇼 등을 혐오했다. 황제를 숭배하는 축제들도 역시 우상숭배로 간주했다.
터툴리안은 모든 죄를 지을 가능한 경우로부터 벗어날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에 헌신하려는 자에게 완전하고 타협하지 않은 순수한 심정을 지닐 것을 강력하게 요청한다.
4) 군복무와 공직에 대한 견해
터툴리안은 대부분의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 중에서 크리스천의 전쟁 개입을 분명하게 옹호하지 않았으며, 군 복무를 폭력, 추잡함, 우상숭배 등을 통해서 죄로 인도하는 유혹으로 이해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크리스천 군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직업적인 요구와 믿음의 요구 사이에 선택을 해야만 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크리스천이 국가의 공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도 극단적으로 회의적이었다. 왜냐하면 크리스천은 각종 사원, 희생제의, 봉헌 등에 참여하거나 지원하는 일에 가담하지 말아야 하며, 사람을 사형에 처하고, 정죄, 투옥, 고문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군복무는 더 위험한 것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주인을 섬기는 것 사이에 일치점이 없기 때문이다.
5) 터툴리안의 평화주의적 성서해석
터툴리안의 살인과 군복무의 금지 주장은 성서에 대한 문자적 이해에 기초한다. 예수의 폭력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복음서의 연대기적 순서가 중요하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라.’는 말씀 (마태복음 5:38-39), ‘검을 든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말씀 (마태복음 26:52) 등을 언급한다.
(1) 성서해석의 권위와 교회
성서의 권위 있는 해석자요, 그 참된 의미의 확실한 보증자는 사도 전증을 계승한 교회이다. 성서 해석자로서 교회의 권위는 성서를 해석하는 원리가 된다.
터툴리안은 ‘성서가 사도로부터 계승된 교회의 산물이다.’는 이레니우스의 견해를 발전시킨다. 그러므로 ‘정통은 해석의 규범이다.’고 주장한다. (Orthodoxy is the norm of interpretation.)
(2) 산상설교의 해석
터툴리안의 살인을 금하는 가르침의 중요한 토대는 산상설교에 대한 엄격한 해석이다. 그는 산상설교에서 맹서하지 말 것과, 폭력을 행사하지 말 것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을 취한다. 「왕권론」에서는 더 나아가 성서가 금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성서가 ‘자유롭게 행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것’은 곧 ‘금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터툴리안은 크리스천의 복수를 금한다. 억울한 일을 당한 자에게는 주께서 고난당한 자의 편에 서서 대신 갚아 주실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천을 공격하는 자는 철저한 무저항에 부닥쳐 낙심하고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3) 구약성서관
터툴리안은 구약과 신약 사이를 구분하면서, 구약의 가치를 인정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을 했어야 했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한 곳에서 칼은 보습으로 바뀌게 된다. (이사야 2:4)
6) 평화주의자로서 터툴리안
터툴리안이 평화주의자요 크리스천의 이상으로서 비폭력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과연 크리스천으로 하여금 세속 정부의 영역에서 물러날 것을 주장하는 분리주의적인 평화주의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물론 그는 대부분의 세속적인 직무가 크리스천의 믿음과 행실에 위험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크리스천이 황제와 로마제국의 번영을 위해서 기도한다는데 근거해서 기독교에 대한 관용을 주장한다. 황제에 대해서, 비록 크리스천이 그를 예배할 것을 거부하지만, 그러나 그의 직책은 주님에 의해서 허락된 것이라고 보았다. 터툴리안은 모든 세속 권위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곧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터툴리안 시대에 크리스천으로 군복무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자신의 직업에 따라 크리스천으로 묘비에 새겨져 매장될 수 있었다. 터툴리안 자신은 크리스천은 로마의 시민으로 가치가 없다는 견해에 맞서서,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We sail with you, and fight with you, and till the ground with you."라고 주장했다.
7) 정리
터툴리안은 국가와 그 통치자의 합법적이고 필요한 기능을 지지했다. 크리스천은, 세속 권력자들의 행위가 언제나 도덕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하더라도, 그들의 직책을 영적인 방법으로 지원한다. 그러므로 평화주의자는 분리주의자가 아니다. 그가 관심하고자 했던 것은 삶의 모든 국면에서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복종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복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크리스천은 박해를 예상해야만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실 것이다. 크리스천은 자신을 거부하는 세상에 대해서 그 방식대로 거부하지 않는다.
그는 세속 사회의 유력한 인물들에게 크리스천의 신앙과 삶의 장점을 정당하게 이해할 것을 계속해서 탄원한다.
크리스천의 신앙과 삶은 성서와의 관계에서 정의된다. 성서에서 신약은 구약에 앞선다. 크리스천의 신실한 가르침을 보증할 수 있는 권위는 교회의 전통에 있다. 이점에서 터툴리안은 본의 아니게 ‘권위적인 전통’을 ‘정통’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2. 오리겐 (Origen, 185-254)
오리겐은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 가정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열일곱 살 때 순교 당했다.
오리겐은 사제, 설교가, 신학자, 변증가, 논쟁자로 뛰어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주교 Demetrius와 논쟁으로 인해서 알렉산드리아 교회에서 추방되었다. Decius 황제로부터 박해를 받았고, 가이사랴에서 사망했다.
1) 신앙생활의 단계적 발전
오리겐은 크리스천이 목표로 삼는 이상적인 삶은 오로지 단계적인 발전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성화되는 개인의 삶에서 실현된다. 이 ‘성화’의 관점에서 그의 평화관과 황제 지지를 이해하게 된다.
2) 알레고리적 성서해석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성서의 역사적 의미를 인정하면서, 그러나 그것을 더 높은 의미에 귀속시켰다. 이러한 문자적 의미를 넘어서는 자유로운 해석에 대하서 안디옥 학파의 주석가들은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문자적 의미를 거부하지 않으면서 넘어설 수 있는 해석 방식은 오리겐과 같은 해석자들로 하여금 유대교 전통과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을 거부하면서도 성서를 해석할 수 있게 했다. 오리겐은 구약성서를 영적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그 깊은 차원에는 신약성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보았다. 신약성서는 구약성서를 넘어서는 높은 단계의 계시이다.
성서에는, 문자적 의미를 넘어서, 신학적, 도덕적, 심지어 철학적 의미가 있다. 성서해석의 인도자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3) 전쟁과 군복무에 대해서
오리겐의 전쟁에 대한 생각은 크리스천이 국가를 위해 필요한 일에 참여하지 않으므로 공공의 유익을 해친다고 주장하는 철학자 셀수스에 대한 글(「Against Celsus」, 248)에서 잘 드러난다.
오리겐은 국가 존재의 합법성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크리스천이 군인으로서 직업적인 폭력에 가담하게 되는 것은 거부했다.
(1) 우상숭배
터툴리안과 달리 오리겐의 저술에서 우상숭배는 별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의 주요 관심은 그리스도가 어떤 형태의 살인, 심지어 악을 행한 자에 대한 보복까지도 절대적으로 금했다는데 있다.
(2) 로마제국과 크리스천
로마 황제의 지배는 국제적인 갈등을 없애고 사도들의 선교적 가르침을 (보복이 아니라 평화를 선포하는) 촉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결과라고 주장했다. 크리스천은 군대복무를 통해서가 기도, 중재, 금욕주의, ‘경건한 특수 군대를 이룸’으로 더욱 효과적으로 황제를 지원한다. 그러므로 이방 사제들처럼, 크리스천은 살인을 하는 일로부터 제외되어야 하며, 공직을 피하고, 교회와 백성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4) 오리겐의 평화주의
크리스천은 양순한 양처럼 죽임을 당하고, 폭력 사용과 박해자에 대한 방어를 삼가야 한다.
알레고리적 해석이 오리겐의 평화주의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평화주의는 산상설교에 대한 문자적 해석에 의존하지 않는다.
(1) 성화의 과정
모든 나라와 종족들 사이에 일치는 역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크리스천은 폭력과 공직 복무를 피해야 한다. 그러므로 점차적으로 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되며, 경건한 삶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다.
오리겐에게 있어서 도덕성이 지극히 중요하다. 성화는 점진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의 사명은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실재를 지금 자신의 삶에서 점차적으로 더 많이 실현해 내는 것이다.
(2) 성령의 역할
폭력에 대한 완전하고 지속적인 거부를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오리겐은 이 세상적인 삶에서 자신의 복음 해석의 긴장을 유지한다. 성령은 점진적인 과정으로서 성화를 가능하게 하는 분이다. 산상설교의 가르침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을 강조하지 않는다. 이점에서 오리겐은 Menno Simons나 퀘이커 교도들과 다르다. 그들은 세상을 거부하고 어떠한 절충 없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것을 주장한다.
오리겐에 의하면 모든 크리스천을 위한 규범은 절대 평화주의이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삶의 완성은 아직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크리스천에게 폭력에 가담하는 것은 죄의 지속적인 표시이며, 전적인 회심과 그리고 말씀과의 연합을 이루지 못한 증거이다.
II. 기독교 공인 이전 시기(313년 이전)의 평화주의의 근거
1. 전쟁과 군 복무에 찬성하기 어려운 여건
1) 종말에 대한 기대
2) 기독교 박해하는 군대에 가담할 수 없음
3) 군대의 황제 숭배로 인한 우상 숭배에 관한 염려
2. 예수의 가르침과 사랑의 모범에 위배된다는 믿음
1) 악에 저항하지 말라 (마태 5:39)
2) 원수 사랑하라 (마태 5:44; 누가 6:27,35 등)
3. 사랑의 정신
1) 이웃의 유익을 구함 (고전 10:24)
2) 선으로 악을 이김 (로마서 12:17,21)
3. 자기 목숨을 버리는 희생 (마태 16:24-25; 마가 8:34-35; 누가 9:23-24)
4. 구약 성경의 해석
1) 율법 계명의 “살인하지 말지니라.” (출 20:13; 신5:17)
2) 예언서의 무력 사용의 금지 (호 7:11; 사 30:15-16)
3) 평화로운 세상의 비전 (사 2:4; 미 4:3-4; 시 85:8-10)
III. 로마 제국의 기독교 공인으로 박해가 끝난 이후 시기
1 인식의 전환 현상
1) 제국의 질서 유지를 위해 내부적 범죄에 대처하는 일
2) 제국의 문명을 위협하는 외부 이민족의 침입에 대처하는 일의 중요성 인식
2. 정전론적 견해의 등장
3. 평화론이 지배적인 견해로 남아 있지 않게 됨
IV. 평화주의의 신념
1. 전쟁은 항상 옳지 못하다고 믿는다.
2. 전쟁이 옳다고 보는 어떤 상황도 인정하지 않는다.
V. 평화주의와 정전론
1. 공통의 신념
모든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므로, 적이라 하더라도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봄
2. 차이점
전쟁이 기독교적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느냐의 여부
1) 평화론: 아가페 사랑을 인정하는 자가 다른 사람을 죽게 하는 일을 행할 수 없다.
2) 정전론: 힘없고 억압당하는 자들을 위한 최종적인 수단으로써의 전쟁을 인정한다.
VI. 평화론자들의 전쟁 반대 유형
1. 실용주의적 이론
1) 비폭력적 방법이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2) 전쟁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라는 ‘공리주의의 원리’에 따른다.
2. 증언적 이론
1) 전쟁은 언제나 옳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2) 비폭력적 방법의 결과에 대한 고려가 아니라 신앙적인 이유로 전쟁에 반대한다.
VII. 실용주의적 평화론의 가치와 한계
1. 실용주의 이론의 전제
1) 정치적 행동에는 다양한 효과적인 방법이 있음을 인정한다.
2) 비폭력적 수단이 폭력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본다.
3) 폭력의 엄청난 대가를 상기시킨다.
2. 실용주의적 평화론에 관한 비판 (Reinhold Niebuhr의 비판)
1) 인간의 죄의 깊이와 집요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2) 신약의 무저항 계명과 비폭력적 저항은 다르다. (마태 5:39)
3) 실제적으로는 전쟁에 비해 전제정치를 도덕적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4) 국제 정치의 구조가 전쟁을 발발하게 하는 기저의 하부구조이다.
평화적인 수단으로 악의 세력을 통제할 수 있는 세계 정부는 없다.
5) 교조적으로 비폭력의 효율성을 과장한다.
VIII. 증언적 평화주의 이론가들
1. John Howard Yoder
1) 실용주의적 이론 배제
비폭력이 폭력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언제나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없다.
2) 중요한 점은 폭력이냐 비폭력이냐가 아니다.
우리의 행위가 하나님의 성격을 반영하고, 제자가 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순종하느냐의 여부에 있다.
3) 크리스천으로 하여금 정치적 삶의 세계로부터 물러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힘의 폭력적 사용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그러한 정치 구조와 협력하는 것은 거부해야 한다.
4) 국가가 제한된 경찰 기능을 행하는 것을 허락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폭력을 쓰도록 부름 받지 않았으며, 경찰의 기능을 하도록 부름 받지 않았다.
5) 크리스천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도록 부름 받았다.
6)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하게 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행위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자신이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에 의해서 도래한다.
2. Stanley Hauerwas
1) 기독교인은 예수에 관한 교회의 이야기에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예수는 어떤 종류의 폭력이나 강압도 거부했다.
2) 교회는 사회의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해 부름 받았고, 예수의 십자가의 삶을 구현하기 위해 부름 받았다.
3) 폭력이 상대적으로 정의로운 질서를 유지하려는 국가의 역할에 본질적이라는 점에 있어서 Yoder보다 덜 확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3. Martin Luther King Jr.
실용주의적 이론과 증언적 이론을 병행하여 제시하는 경우이다.
1) 모든 폭력을 거부하는 것이 사랑의 의미에서 본질적이라고 믿었다.
2) 상황적으로 비폭력 저항이 불의에 반대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믿었다.
어쩌면 비폭력이 항상 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IX. 증언적 평화론의 가치와 문제점
1. 증언적 평화론의 가치
1) 비폭력의 효율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신념에 근거하여 주장한다.
2) 평화론에 대한 판단이 본질적으로 신학적인 판단임을 인정한다.
3) 기독교적 삶의 엄격한 성격을 매우 심각하게 다룬다.
2. 정전론적 관점에서의 문제제기
1) 아가페 사랑에 관한 이해
(Paul Ramsey) 사랑의 관심은 이웃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 이웃과의 계약을 신실하게 지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웃이 위협을 받을 때, 이웃을 압제하는 자에 대한 폭력 사용은 불가피한 것이다.
진정한 제자도는 부당하게 공격받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저항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Yoder) 하나님 신앙을 통해 폭력 사용을 거부하는 사람이 예수의 진정한 제자이다.
2) 기독교인은 이웃에 가해지는 부당한 폭력을 방지할 책임을 져야 하는가의 문제
(Yoder와 Hauerwas) 기독교적 하나님 신앙이 어떤 사건의 경로를 우리 마음대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다만 제자됨을 표현하는 비폭력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
(정전론) 어떤 동기에서든 간에 희생당하는 이웃을 도와야 한다. 폭력의 사용에 이른다 하더라도, 우리가 허용한 악에 대하 부분적인 책임이 있다.
3) 교회의 역할에 대한 문제
(Yoder와 Hauerwas) 교회는 예수의 모범과 가르침을 철저한 삶의 방식으로 구현해야 한다. 교회는 그 자신의 말씀의 증언과 사랑의 역사를 세상에 제시한다. 교회가 하나의 사회적 윤리일 뿐이지, 공공 정책을 수립하는데 함께 숙고할 만큼 정치권력과 충분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Niebuhr와 Ramsey) 교회는 필연적으로 공공 정책에 영향을 끼치며, 또한 반드시 그렇게 영향을 끼쳐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X. 평화론의 역사적 맥락
1. 4세기, 성직자의 비폭력주의
수도원 운동
2. 중세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평화론적 경향
3. 중세 평화론자 집단
발도파 (Waldensians), 카타리파 (Cathari), 후스 일파 (one branch of Hussites)
4. 종교개혁과 평화교회 운동
메노파 (Mennonites), 후터파 (Hutterites)
5. 17세기와 18세기 평화교회 운동
퀘이커 교도 (Quakers), 형제파 (Brethren)
6. 20세기
강력한 평화주의 운동이 개신교와 가톨릭 교회에서 일어남
XI. 종교개혁 시대의 평화주의
1. 평화주의의 공통점
1) 성서, 특히 신약 성서의 복음을 실현하려고 함
예수의 직접성: 예수의 도덕적 요구를 현재의 삶에서 실현하려는 의지
i) 예수의 비폭력적 행위
ii) 복음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라는 예수의 권면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의 몸에 속한 자로써, 그의 이웃과 원수를 은혜와 용서로 대해야 한다. 그러므로 완전해야 한다. (눅 6:36; 마 5:48)
2) 예수의 십자가, 구원, 은혜, 사랑에 맞서는 물리적인 폭력, 특히 전쟁을 거부한다.
3) 공감대를 이루는 통찰력
i) 모든 인간은 개인으로서 같은 인간존재라는 생각
ii) 인간은 누구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 있는 잠재성이 있다는 생각
4) 기존의 종교적인 제도적 규범을 간과한다.
5)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종말론과 관계가 깊다.
2. 평화주의자들 사이의 강조점
1) 성서의 해석
엄격한 의미에서 성서의 문자적 해석에 매여 있지 않다.
성서의 규범적 명언 (ex. 원수사랑, 마태 5:44)을 자신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에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행위의 규범으로 받아들인다.
i) 재세례파 (Anabaptists <Menno Simons, 1496-1561>)
철저하게 성서적이다.
근본주의적인 성격을 지니며, 폭력을 전적으로 거부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무저항적인 삶
ii) Erasmus (1466-1536)
성서 해석의 복잡함을 강조한다.
가장 덜 성서 중심적이다. 고전적 자료로부터 지혜를 찾는다.
인간됨의 의미와 크리스천의 사랑에의 열정
iii) the Quakers (George Fox, 1624-1691)
더 철저한 평화주의자로써, 성령의 영감에 의한 성서의 참된 읽기를 주장한다.
모든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 본성, 그리스도의 인격과의 신비한 결합
2) 국가와 크리스천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
i) 재세례파 (Mennonites)
역사적인 평화교회로 불린다. 산상설교에 기초하여 전쟁 반대 한다. (퀘이커교도)
철저한 제자직을 강조하고, 세속적인 삶의 영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Menno Simons은 정부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정부에 참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명령과 충돌을 빚게 될, 저 세상적인 제도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ii) 에라스무스
크리스천의 삶과 정치의 밀접한 관계성을 인정한다.
사회를 이성적인 수단에 의해서 변화시키고자 했다. (통치자, 후견자, 영향력 있는 인물들 등, 권력 구조를 사용한 변화 지향)
크리스천 통치자가 군사력을 사용함에 있어서 도덕적으로 제약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기 않았다.
iii) 퀘이커교도
성서와 전통을 성령의 현재적 역사하심의 관점에서 상대화한다. (the Light within)
성서가 지금 요구하시는 것을 지침으로 삼는다.
회심자에게 사회적 힘이 있는 풀뿌리 운동, 노동계급의 운동을 대표한다.
3. 평화주의의 두 경향
1) 사랑의 실현을 강조하는 평화주의 (에라스무스, 퀘이커교도)
타자와의 일치를 강조한다.
Erasmus의 저작에서는 Menno Simons나 George Fox에 비해서 개인의 내적 경험이 덜 강조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나라의 완전함을 지향함과, 사랑의 삶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본성에 있어서, 그리고 특히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인격적인 존재로서 개인들의 일치를 주장한다.
George Fox에 의하면, 평화주의자에게 중요한 것은 복종, 의무, 그리스도를 본받음 등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내적으로 변화된 삶이다. 하나님 나라의 이상은 규범 같은 형태로 강요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은총은 그리스도의 영의 현존을 통해서 개인과 공동체 안에 임재하게 된다.
2) 의무에 대한 복종을 강조하는 평화주의 (재세례파, 터툴리안, 오리겐)
그리스도의 희생을 본받는 복종이다.
4. 종말론에 관한 견해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소수 평화주의 집단은 제자 공동체로서 철저한 실천과 증거의 과제를 설정함으로써 복음의 종말론적 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을 신중하게 간직해왔다. 이점에서 있어서 재세례파와 퀘이커교도, 그리고 에라스무스는 분명하게 구별된다.
에라스무스는 크리스천을 높은 단계와 낮은 단계에 속한 자들로 구별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리고 크리스천이라면 모두 자신의 삶의 진정한 목표로써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성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