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폰 클라우제비츠, 『전쟁론』
[Carl von Clausewitz, Vom Kriege (On War)]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인류의 문명사는 전쟁이란 무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구 문명의 가장 오래된 기록 문헌인 호머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와『오딧세이』는 트로이전쟁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과학의 역사도 전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과학의 발달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효과적인 살상 무기의 개발과 궤를 함께해왔다.
역사적으로 전쟁에 관한 수많은 병서 또는 전쟁론이 집필되어 왔다. 그 중에 동서양을 대표하는 전쟁론을 꼽으라면 손무(孫武)의 『손자병법』과 클라우세비츠의 『전쟁론』이라고 하겠다.
물론 두 전쟁론이 쓰인 시공의 차이가 크다. 춘추시대 말기 오나라의 무장 손무가 지은 『손자병법』은 현존하는 중국 최고(最古)의 병서이다. ‘손자병법’은 기원전 4세기 이전 중국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고전’의 범주에 드는 책으로써, 서양에서도 Sun-tzu의 『Art of War』란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72년에는 한나라 시대 무장의 묘에서 ‘손자병법’이 기록된 죽간이 발굴됨으로써, 이 책의 한나라 시대 이전의 존재에 대한 회의론을 불식시키고, 손자의 저자 설을 입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손자는 ‘전쟁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대사’이므로 분노와 같은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중한 판단에 기초해야 하며, 더구나 ‘국가의 이익’에 합치하지 않는 전쟁은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는 ‘전쟁을 즐겨하는 장수중에 큰 인물이 없다’고 하면서, 전쟁에 임하는 장수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다섯 가지 기본조건(道, 天, 地, 將, 法)을 제시한다. 첫 번째 ‘도’는 백성으로 하여금 군주와 한 뜻을 이루며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정치적 역량을 가리킨다.
반면에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서양 근대사의 산물이다.
I.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 1780-1831)에 대하여
1. 클라우제비츠의 생애
클라우제비츠는 프러시아 Magdeburg 출생이다. 그의 증조부는 목사였고, 조부 역시 목사요 신학 교수였다. 그러나 그의 집안은 군인 가문에 속했다. 부친은 프러시아군의 장교였는데, 참전한 전쟁터에서 한 쪽 팔을 잃고 전역했다. 아버지를 이어 자식들이 군에 입대(4남 2녀 중 세 아들)하여 모두 장군이 되었고, 조카들도 대부분 군인이었다.
클라우제비츠는 15세에 소위로 임관하여 군인의 일생을 살다가 콜레라에 걸려 사망했다. 그는 ‘청년장교학교’ 시절에 프러시아의 군제개혁에 큰 역할을 했던 샤른호스트(Gerhard von Scharnhorst)를 만나, 그의 영향으로 『전쟁론』을 쓰게 되었다.
1812년, 프러시아의 황제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나폴레옹과 동맹하여 러시아와의 전쟁에 나서자, 클라우제비츠는 프러시아의 적국인 러시아군에 가담하여 대불동맹에 참가했다. 그리고 러시아 알렉산드로 황제 휘하에서 대불전쟁을 수행한 경험을 토대로 빌헬름에게 “전쟁 원칙론”을 써 보냈다. 여기서 그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전쟁양식에 적응하는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프랑스 혁명전쟁(1792-1800)은 절대왕조체제를 지탱해 온 구체제를 타파하고, ‘자유, 평등, 박애’의 3대 혁명이념을 앞세워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려는 격동의 시기였다. 이에 맞서 유럽의 절대군주들은 프랑스의 왕정복고를 지원하기 위한 ‘대불동맹’을 맺었다. 그 결과 1814년, 대불동맹군에 의해 파리가 함락되고,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유배를 갔다.]
1813년, 프러시아에 복귀한 클라우제비츠는, 1818년, 베를린의 사관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는데, 이 시기에 『전쟁론』을 집필했다. 그러나 『전쟁론』의 출간은 그의 사후에 아내 폰 마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2. 새로운 전쟁 개념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근대 전쟁의 총체적이고 본질적인 의미를 다루고 있다.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의 등장으로부터 전쟁의 행태가 근본적으로 변했음에 주목하면서, 근대적 의미의 새로운 전쟁 개념을 정리하여 제시했다.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전쟁 관련 주요 용어들이 대부분 그가 제시한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겠다.
1) 국민전 유형
나폴레옹과 더불어 새로운 전쟁 형태가 등장했다. 군주들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국민 대 국민의 전쟁으로, 전쟁의 주체가 전환된 것이다.
2) 근대 전쟁의 속성
‘절대전’; ‘전격전’; ‘총력전’; ‘섬멸전’ 등
3) 국가 정책의 수단으로서의 전쟁
4) ‘제한전쟁’ 양식
5) ‘물량전’ 우선론
물량전을 전제로 한 ‘정신전력’의 중요성 강조
6) ‘인민전쟁’ 양식
7) 게릴라 전쟁의 기초이론 정립
II. 『전쟁론』의 주요 내용
1. 전쟁의 정의
전쟁이란 적대자로 하여금 우리의 의지를 완벽하게 이행하도록 강요하려는 폭력행위이다.
전쟁이란 쌍방의 힘이 극한적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중지되지 않는 폭력행위이다.
1) 전쟁의 수단은 폭력, 즉 물리적인 힘이다.
2) 전쟁의 궁극적인 목적은 적으로 하여금 우리의 의지에 강제적으로 복종하게 하는 것이다.
2. 전쟁과 인도주의 문제
전쟁은 물리적 힘을 극대화해서 사용한다. 유혈사태가 수반되는 상태를 고려함 없이 무자비하게 힘을 행사하는 자가 반드시 우월성을 확보하게 마련이다.
전쟁은 일방이 완전히 몰락하게 될 때까지 지속되는 ‘절대전쟁’이요, 모든 폭력을 사용하는 ‘극단적인 전쟁’이 된다.
3. 전쟁으로 유도하는 동기
1) 본능적인 적대감정
2) 적대적인 의도
4. 전쟁의 기본 목표
적을 무장해제 하는 것 (적의 괴멸)
5. 전쟁의 기본 동인
1) 정치적 목적
문명국 사이의 전쟁은 언제나 정치적 동기에서 일어난다. 정치적 목적은 전쟁에서 국민 대중을 움직이는 데 가장 효과 있는 척도가 된다. 그러므로 전쟁은 ‘정치적 행위’이다.
2) 정치적 수단
전쟁은 정치적 수단이고, 정치적 거래의 계속이다.
정치적 의도는 목적이고, 전쟁은 수단이다.
6. 전쟁의 형태
공격과 방어
7. 전쟁의 우연성
전쟁은 일종의 도박이다. 우연성(요행)이 행운과 함께 전쟁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8. 전쟁의 세 가지 성향
1) 거의 맹목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증오와 적의
2) 개연성과 우연성이 개재된 도박성
3) 정치적 도구라는 종속성
9. 전쟁의 주체와 세 가지 성향
1) 국민
폭발하는 열정이 국민들의 감정에 잠재해 있어야 한다. 전쟁은 국민으로 하여금 적을 증오하는 적대감을 갖게 한다. 적대감은 원초적으로 폭력적이다.
2) 군대와 지휘관
군사들의 용기와 재능이 발휘되는 범위가 있다.
전쟁의 승패는 지휘관의 증오감 등의 정신 상태에 따라서 영향을 받는다.
3) 정부
정부는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정치적인 목적을 관장한다.
III. 『전쟁론』의 정리
1. 국가의 절대 인격화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국가 사이의 적대적 행위로 간주하고, 전쟁을 주도하는 국가를 ‘절대적 존재’로 인격화했다.
2. 전쟁의 절대화
국민의 이익은 전쟁의 가능성에 종속된다고 보았다.
3.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전쟁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에 있다. 수단을 달리해 계속되는 정책일 뿐이다.
4. ‘무제한성’의 개념(the idea of limitlessness)
전쟁은 이론적으로 제한 없이 물리력을 행사하는 행위이다.
군사적 행동은 본래적으로 한계를 알지 못한다. 상대방에게 가하는 무력의 결과는 무력의 상호 작용, 즉 지속적인 확대이다. 전투가 극에 달하면 달할수록, 폭력의 사용은 더욱 강해진다.
5. 전쟁의 잔혹성
전쟁의 특정한 확대, 특정한 무력적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나 때때로 전쟁은 매우 안정된 상태의 폭력과 잔혹성을 띠기도 한다.
6. 제한 전쟁(limited war)
제한 전쟁은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다.
그 전쟁의 영역을 넘어 확대되는 전쟁은 더 큰 비극을 초래한다.